“Internet centrist” on Sparkling Korea

May 21, 2007

Taekwondo is a ripp off, but we don’t remember that

Filed under: Ethnocentrism, Korea, Lies, Uriginal — fuga @ 2:50 am

This is soooo Korean. I’m sorry, but I can’t stop the smile on my face. lol

“The fact that Tae kwon do has never been existed before 1955 and it was created by Korean students who studied in Japan has been proven to be true, but it was forgotten. It is very hard to find those who don’t believe so-called the official history of Taekwondo which was enforced/created. Now, no one deny it became our national sports.”

This is soooo typical Korean. :-) :-) :-) :-) :-) :-) :-) :-) :-) :-)

This must be the famous “historical amnesia” Hilary Clinton put it.

Now, I know it’s useless to point this out, but let me for the sake of it. Please stop claiming Kendo, Sado, Kado, karate and all that originate from Korea and evil Japan stole and destroy Korean culture bullshit once and forever right freaking now!! :-)

Uriginal (Wikipedia)

못 참겠다 ‘당신들의 태권도’ The Hankyoreh May 17th 2007

한국인들에게 태권도는 스포츠 그 이상의 무엇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몰아친 민족주의 열풍 속에서 태권도는 민족의 국기(國技)로 가파른 성장을 거듭했다. 도올 김용옥이 1990년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라는 논문에서 “지금의 태권도의 모체가 되는 관(도장)은 거개가 다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주도됐으며… 1955년 4월11일 이전에는 태권도라는 말이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증했지만, 그의 주장은 곧 잊혀졌다.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국기원판’ 태권도의 역사가 사실이든 ‘동원된 역사’이든 이제 태권도가 우리 민족 고유의 무술이 됐음을 의심하는 사람을 찾긴 힘들다.

해외 단증, 심시하지 않고 발급

태권도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은 한국의 민족주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해방 이후 근대 태권도 발전사를 관찰해보면, 세종대왕, 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교육헌장, 초등학교 운동장의 이순신·이승복 동상에서 드러나는 것과 비슷한 70년대식 민족주의 코드가 읽힌다. 그 열풍에 김운용이라는 촉매제가 더해지면서(그는 1971년 7대 대한태권도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태권도계에 입문했다), 태권도는 전세계 182개국 7천만 명의 사람들이 즐기는 국제적인 대중 스포츠로 발전했다. 태권도의 드라마틱한 성공을 상징하는 사건은 아마도 1994년 9월5일 파리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이뤄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결정일 것이다.

…..

[Japanese translation]

韓国人たちにテコンドーはスポーツその以上の何だ. 朴正煕政権時代急きまくった民族主義熱風の中でテコンドーは民族の国旗(国技)で険しい成長を繰り返えした. ドオル金容沃が 1990年 ‘テコンドー哲学の構成原理’という論文で “今のテコンドーの母体になる管(道場)は挙皆がすべて日本留学生たちによって主導したし… 1955年 4月11日以前にはテコンドーという言葉が人類歴史上存在しなかった”は事実を実証したが, 彼の主張はすぐ忘れた. 三国時代までさかのぼる ‘国旗原版’ テコンドーの歴史が事実でも ‘動員された歴史’でももうテコンドーが我が民族固有の武術になったことを疑う人を捜すことは大変だ.

テコンドーの最大の成長動力は韓国の民族主義だったという事実を否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 解放以後近代テコンドー発展史を観察して見れば, 世宗大王, 国旗への誓い, 国民教育憲章, 小学校運動場の李舜臣・李スンボク銅像で現われることと似ている 70年代式民族主義コードが読ませる. その熱風にキム・ウンヨンという触媒制が加わりながら(彼は 1971年 7台大韓テコンドー協会長で就任しながらテコン道界に入門した), テコンドーは全世界 182ヶ国 7千万名の人々が楽しむ国際的な大衆スポーツで発展した. テコンドーのドラマチックな成功を象徴する事件はたぶん 1994年 9月5日パリで開かれたアイオーシー(IOC) 総会で成り立ったオリンピック正式種目採択決定であるでしょう.

歓呼は終わったし, ‘テコンドーのお父さん’ キム・ウンヨンは沒落した. 2007年春テコン道界の最大話題はもう一度 ‘テコンドーの危機’だ. 2001年テコンドー改革勢力の登場に表面化された ‘テコンドー危機説’は 2005年シンガポールで開かれた第117次 IOC 総会で “ロンドンオリンピック退出種目名簿にテコンドーが辛うじてすり抜けて来た”と言う消息が伝わりながら本格化された. 最近この流れに油を注ぐ事件が起こった. 世界テコンドー連盟(以下世界連盟) 傘下ヨーロッパテコンドー連盟(以下ヨーロッパ連盟) などが “自体ダンズングを作る”と宣言したからだ. その間ダンズング発給業務は世界テコンドーの中央道場と呼ばれる国技院が享受して来た排他的な権利だった. 異径人展東亜大テコン道学科招聘教授は “世界テコンドー人たちは国技院ダンズングを土台で一つで縛られることができた”と言った. 外国テコンドー人たちが国技院ダンズングを拒否して出たということは国技院と韓国テコンドーに対する外国人たちの不信が極まったことを志す.

テコンドーはどこに行くか. <한겨레21> 銀韓国のテコンドーを眺める外国テコンドー関係者たちと深層的なインタビューを試みた. 彼らは “韓国がテコンドー宗主国として権威を失った”と言ったし “これ以上国技院ダンズングを信じにくい”は荒い言葉もこぼし出した.

“Taekwondo was an imitation of Karate”

http://www.mooto.com/kor/webzine/news_view.asp?news_no=1105

태 권도가 가라데 영향 받은 것은 사실
-태권도 초기 원로들 대개가 가라데 수련자
김준성 기자 (2001/03/07)/추천수:1

3월 6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정홍보처가 한국관련 외국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한국정보가 있는 외국 사이트 654개를 검색한 결과 이중 56.4%인 369개에서 515건의 잘못된 정보를 찾아냈다고 한다. 이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태권도 관련 부분이다.

국정홍보처는 미국 몬타나 대학의 격투기 사이트(www.bstkd.com)가 태권도의 기원이 일본의 가라데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국정홍보처는 아울러 이 사이트 운영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시정하라고 요구하고 관련자료를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홍보처의 이러한 조치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태권도가 가라데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일뿐더러 심지어는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파생된 무술이라는 주장을 한다 해도 이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도관 창립자인 이원국 옹 등 1940년대 중후반 태권도를 전파하는데 앞장 섰던 많은 원로들이 일본에서 가라데를 수련한 이들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 이원국 옹은 일본 송도관 계보에 지금도 그 이름이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무관을 세운 노병직 옹도 일본 송도관 가라데를 수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이 세운 송무관의 ‘송’자가 바로 송도관의 ‘송’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원국 옹이 세운 청도관의 ‘도’ 또한 송도관의 ‘도’다. 이는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부탁한 태권도 원로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이 원로는 태권도는 가라데의 ‘이미테이션(imitation)’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청도관 출신 우종림 장군은 기자와의 대화에서 “나는 공수도를 했었고 나중에 최홍희 장군 등이 주축이 돼 이름을 바꾼 것일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태권도 발전에 큰 공헌을 한 ATA의 고 이행웅 회장도 자신이 처음에 미국에 갔을 때 ‘코리언 가라데’라고 자신의 무술을 소개하며 가르쳤고 실제 태권도와 가라데의 차이는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모두 태권도라는 무술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가 가라데를 배운 사람들이 해방후 도장을 열어 가라데의 한국식 발음인 ‘공수도’를 가르치다가 나중에 ‘태권도’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강원식 태권도신문사 사장과 이경명 충청대 교수가 공동 집필한 ‘태권도현대사’에서도 잘 소개되어 있다.

양진방 용인대 교수나 김영선 연세대 강사, 안용규 한체대 교수 등도 한결같이 태권도가 가라데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고 그들의 입장은 상당히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강원식 태권도신문사 사장도 자신이 강의하는 대학원 수업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1945년 이전에 우리나라에 ‘태권도’라는 무술이 존재했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고 현실적으로 초기 태권도 원로들이 모두 가라데 수련자라는 점을 봤을 때 현재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이 채택하고 있는 ‘2000년 역사의 태권도’라는 공식적인 입장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진방 교수는 일찍이 해방 이전의 ‘태권도사’는 ‘전통무예사’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해방 이후에 태권도를 수련했던 원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태권도의 용어나 기술 등 모든 것이 가라데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원로는 그것이 가라데라는 사실도 모르고 배웠지만 나중에 가서야 그것이 가라데와 똑같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태권도는 50여년의 시간을 경과하면서 가라데를 ‘극복’해왔다. 고유의 발차기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고 경기화 부문에서는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괄목한 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나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이미 태권도는 독자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확보했고 가라데에 주눅들지 않아도 될만큼 세계적으로 전파됐다. 그리고 태권도의 종주국이 한국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이상 ‘전통 콤플렉스’에 빠져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파심에서 추가하자면 태권도와 가라데의 관계 문제를 논할 때 수천년 전 고대사는 들추지 말자는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봤을 때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문화가 전파되었으니 일본 것의 원류는 결국 모두 우리 것이라느니 가라데의 원류가 탄생한 오키나와 같은 작은 섬에서 기마자세가 나올 리가 없으니 이는 말을 타고 다니던 대륙에서 건너간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느니 하는 말들 말이다. 이는 전혀 다른 논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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